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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사사기는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 사사가 다스리던 때의 기록입니다. 사사 시대는 340년입니다. 사사기의 사이클이 있습니다. “악행 → 압제(심판) → 부르짖음 → 구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악행을 저지르다가 심판을 받으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셔서 이스라엘은 다시 평안을 누립니다. 평안하면 은혜를 잊고, 다시 죄를 짓고, 또 이방의 압제를 당하면, 다시 기도해서, 다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사이클입니다.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고 했고 4장 1절에도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라고 했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340년 동안 끊어내지 못하고 돌고 돌았다는 스토리입니다. 악순환을 거듭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께 악으로 갚았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죄와 은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돌고 또 돌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사 시대처럼 돌고 도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 있으라고 합니다(행13:43). 항상 은혜 가운데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말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말씀 가운데 있으십시오. 이것이 우리 신앙을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십시오. 은혜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6장에서 8장까지는 기드온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사사기에 12 사사가 나오는데 기드온과 삼손 스토리가 가장 깁니다. 기드온 스토리가 긴 이유는 기드온이 소심하고 의심이 많아서입니다. 성경에서 의심 많은 사람을 두 명 꼽는다면 구약에서는 기드온이고, 신약에서는 도마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숨어 있는 마가 다락방에 오셨는데 하필 그 자리에 의심이 많은 도마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했지만 믿지를 않았습니다. 최소한 열 명의 제자가 동시에 봤습니다. 그런데 믿지는 않는 거예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도마에서 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을 때 도마는 성경에 영원히 기록될 명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도마가 의심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이 의심 많은 도마를 통해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의심이 많고 소심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좋음이 좋은 사람도 쓰시지만 의심이 많고 소심한 사람도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에 대해 강해지다
2절에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이겼다”가 정상인데 거꾸로 됐습니다. ‘이기다’는 말(아자즈)에는 ‘강하게 하다’, ‘강하게 되다’는 뜻이 있습니다. “미디안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는 말씀은 “미디안 손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해졌다”라는 뜻도 됩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더 강했는데 반대로 이제는 미디안이 더 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 12000명이 미디안을 치고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미디안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 보다 더 강해했습니다. 왜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 보다 더 강해졌을까요? 이스라엘에 돈이 없었을까요? 기술이 부족했을까요? 그 이유를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졌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니 힘도 약해진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손이 아니라 미디안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죄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내 손을 들어주시는 삶을 삽시다. 믿음의 삶을 삽시다.
죄와 은혜는 반비례합니다. 죄가 많아지면 은혜는 적어지고, 죄가 적어지면 은혜는 많아집니다.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향한 은혜가 약해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은혜가 약해지면 원수가 강해집니다. 마귀가 강해집니다. 그래서 미디안이 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기필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사무엘하 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다윗의 큰 죄로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됐습니다. 다윗의 큰 죄가 이스라엘의 원수를 크고 강하게 했습니다. 죄가 원수의 손을 높이 들어준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좋아지면 주변 나라들의 힘이 약해져 이스라엘이 평안했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약해지면 주변 나라들이 강해져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앗수로, 바벨론, 그리스, 로마 등 세계 4대 제국은 모두 이스라엘 신앙이 약해졌을 때 일어난 나라들입니다. 참 이상하고도 신비한 일이죠.
여러분! 이 세상의 어둠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도덕, 윤리, 경제,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죄가 깊어질수록 은혜는 멀어지고 은혜를 깊이 체험할수록 죄는 멀어집니다. 죄는 원수들을 강하게 하는 영양제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마귀에게 먹이를 주는 일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마귀에게 영양제를 주는 일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마귀를 강하게 하는 일입니다. 죄를 짓는 일은 마귀에게 나를 짓밟고, 내 가정을 짓밟고, 교회를 짓밟으라고 사주하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 합시다. 은혜를 깊이 체험하십시오. 마귀를 강하게 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세상에 깊이 들어갈수록 은혜는 약해집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나올수록 은혜는 깊어집니다. 은혜를 깊이 체험해 내 가정에 우리 사회에 죄가 멀어지게 합시다. 깊이 기도하십시오.. 깊이 성경 보십시오. 깊은 은혜를 받으십시오. 깊은 신앙생활을 해보세요. 놀라운 은혜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로 힘을 잃게 합시다.
땅굴 파는 그리스도인
기드온 시대에 죄가 얼마나 깊었는지 이스라엘은 민족의 존폐 여부에 직면합니다.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고 했습니다. 인종 청소를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4절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토지소산을 멸하고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양식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5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을 땅에서 멸절시키려고 했습니다. 90년 전에 히틀러가 유대인이 아리안 족의 피를 더럽힌다며 유럽 내에서 유대인을 멸절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인종 청소가 32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시도됐습니다. 죄가 깊어지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기가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을 피해 산에 웅덩이와 굴을 파고, 산성을 쌓고, 숨어서 참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2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웅덩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미느하로트입니다. 미느하로트는 구멍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 웅덩이, 구멍을 파고 그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선사시대 원시인들처럼 굴과 웅덩이에서 혈거 생활을 한 것입니다. 산에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양식도 감추고, 몸도 숨긴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도 않도록 위장을 했습니다. 가까이 와서 자세히 살펴야 겨울 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과 용기 있게 싸우지도 못하고 기가 죽어 땅에 구멍을 파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참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1925년에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올브라이트가 이끄는 탐사대가 '키르얏 세퍼'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유적지인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에서 사사 시대 지층을 발굴했습니다. 산 속에 돌로 창고를 쌓고, 구멍을 이쪽저쪽으로 내고, 뒷문과 앞문을 냈습니다. 미디안이 이쪽으로 오면 저쪽으로 도망하고, 저쪽으로 오면 이쪽으로 도망가려고 출입구를 앞뒤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밭에서 일을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이 일하시는 동안 저는 밭에서 놀았습니다. 두더지가 밭 여기저기에 굴을 파놓았습니다. 두더지를 한 번 잡아보려고 땅을 파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더지가 이쪽을 굴을 파면 저쪽으로 가고, 저쪽을 파면 이쪽으로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서 두더지처럼 산 것입니다.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굴하고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유는 열방의 센타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찬란하게 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기도 못 펴고 미디안에 눌려 산에 웅덩이를 파고 비굴하게 숨어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5: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산 위에, 높은 곳에 불을 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빛을 찬란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빛을 찬란하게 들어내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말씀을 보면서 ‘나는 두더지 같이 땅굴에 숨는 비굴한 목사인가 아니면 세상에 찬란하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목사인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믿음의 문제를 비겁하게 피하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아니면 당당하게 맞서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땅에 구멍을 파는 비굴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맙시다.
6·25사변 때 논산 강경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 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산당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겼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 목사님은 후배 목사님에게 두껍고 큰 종이를 가지고 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에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무슨 명함입니까?” 목사님은 말없이 종이를 자르시고 거기에 ‘강경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하시려고요.” “아니, 이 사람이!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이종덕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구원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자가 아니라 선지자를 먼저 보내십니다. 7-8절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 ” 이스라엘에게는 지금 당장 배를 채울 먹을 것과 싸울 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먹을 것과 칼이 아니라 선지자를 보내주십니다. 선지자를 주셨다는 말은 말씀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먼저입니다. 돈의 문제가 신앙의 문제일 수가 있습니다. 직장의 문제, 건강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사회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 문제가 있습니다. 고통이 오고, 아픔이 오면 먼저 엎드려 기도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씀은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며 나를 진단하는 의사입니다.
병원에 가면 처방을 먼저 내리지 않습니다. 진단을 먼저 합니다. 증상을 확인하고, 혈압을 체크하고, 피 검사를 먼저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CT, MRI도 찍습니다. 병을 알아야 약을 쓸 수 있습니다. 약사가 아무 약이나 막 주는 것 아닙니다. 오늘 박 권사님이 못 나오셨는데 권사님이 발과 손이 절여서 병원에 갔더니 발이 절인 이유는 허리 때문이고, 손이 절인 이유는 목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허리를 치료해야 발 절임이 없어지고, 목을 치료해야 손절임이 없어집니다. 다리 아프다고 다리에 찜질하면 금방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아픕니다. 증상만 없어진 것이지 나은 게 아닙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권사님 아들이 감기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감기약을 오래 먹었는데 낫지를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지금 기억하기로는 권사님 아들이 감기약을 두 달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낫지를 않아서 지역 종합병원에 갔습니다. 그래도 낫지를 않아서 다른 지역 종합병원으로 갔다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중에 쓰러졌습니다. 알고 보니 감기가 아니라 뇌수막염이었습니다. 권사님의 연락을 받고 달려갔더니 응급실 한 쪽에 있어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보니까 병원에서 포기한 거예요. 뇌수막염에 감기약을 계속 주는 것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진단 없는 치료는 치료가 아니고 사기예요. 진단 없이 치료하는 것은 환자에게 죽으라는 거예요.
어제 교회에 있다가 결혼식을 가려고 구두를 신었습니다. 필요할 때 신으려고 교회에 구두를 한 켤레 가져다 놓았어요. 몇 달 만에 신는 구두예요. 양말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 신었습니다. 구두를 신고 가려고 하는데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하나 밟혀요. 무시하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너무 커서 신발을 벗어서 한쪽 발을 든 채로 바닥에 탁탁 털고 다시 신었습니다. 그런데 모래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바빠서 그냥 갈까 하다가 한 번 더 털어서 신었는데 여전히 밟혀요. 이번에는 한쪽 발을 들고 손을 신발 안쪽에 넣어서 만져보았는데 돌멩이가 없어요. “빠졌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신었는데 모래가 여전히 밟혀요. 다시 손을 넣어서 더듬어 보았는데 확실히 없어요. 그래서 다시 신었더니 아직도 밟혀요. ‘이게 뭐지! 설마 모래알이 양말 속에 있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까치발을 한 채로 발바닥을 만져보니 모래알이 양말 속에 있어요. ‘모래알이 양말 속에 어떻게 들어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정확하게 진단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써도 병은 낫지가 않습니다.
선지자를 먼저 보내신 이유는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진단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명의 선지자는 드보라와 다릅니다. 드보라는 말씀으로 꿀처럼 달콤하게 풀어주었는데, 이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망했습니다. 에스겔 2장, 3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두루마리를 먹는 환상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을 말씀을 먹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손이 있는데 그 손에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축복의 말씀이 아니라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셔서 에스겔이 입을 벌렸더니 하나님이 두루마리를 먹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에스겔이 애가와 재앙의 말씀을 먹었는데 꿀 같이 달았습니다. 우리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쓴 말씀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쓴 약이 병을 고칩니다. 울며 회개하고 가슴을 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굶주림과 학대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빵과 칼을 주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칼 문제도 아니고, 빵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빵을 줘서 눈에 보이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또 터집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말씀의 엑스레이로 내 영혼과 내 삶을 비춰봐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진단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준 말씀은 너희들이 출애굽 신앙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8-9절 “…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출애굽한지 200년이 됐습니다. 출애굽은 아주 옛날이야기입니다. 선지자는 200년이 지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출애굽일까요? 출애굽은 이스라엘 존재의 시작이고 근거입니다. 출애굽을 잊는 것은 존재의 근거, 민족의 뿌리를 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500년이 지나고, 1000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출애굽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존재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잊는 것은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나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출애굽, 출애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설교를 할 때 출애굽, 출애굽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시작과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 이름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성당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달려 있고, 예배당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천주교는 예수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고,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산둥성에 가면 공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인도에 가면 여러 곳에 석가탑이 있습니다. 석가의 무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근거는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의 죽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믿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영적 출애굽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십자가, 예수 이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 이름은 우리의 존재의 시작이고 근거입니다.
라이언 킹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프라이드 랜드에 무파사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동생 스카가 형 무파사를 죽이고 왕 위를 빼앗습니다. 무파사의 아들 심바는 삼촌을 피해 도망갑니다. 악한 왕 스카의 통치하에 프라이드 랜드는 점점 황폐해집니다. 시간이 흘러 심바 왕자는 어엿한 청년 사자가 됩니다. 어느 날 현자인 라티키가 왕자라는 신분을 잃고 방황하는 심바를 찾아갑니다. 라티키는 심바가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게 하며 아버지는 네 안에 살아계신다고 가르쳐줍니다. 심바가 연못을 바라보며 자기 모습을 보다가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때 무파사가 나타나 아들을 부릅니다. “심바!” “아빠?” “너는 나를 잊고 있었구나!” “제가 언제요 아빠? 저는 아빠를 잊은 적이 없어요.” “네가 누구인지 잊은 것이 바로 나를 잊은 것이란다. 네 내면을 보라. 넌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다. 네가 반드시 찾아야 할 왕의 자리를 회복하라!” “제가 어떻게요?” 이때 무파사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너는 나의 아들이고 진짜 왕이다.” 아버지 무파사 왕이 사라지면서 기억하라는 말이 메아리칩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심바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돌아가 황폐한 프라이드 랜드를 평화의 나라로 회복시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원수와 싸울 수 있습니다. 나를 모르면 두더지처럼 사는 것입니다. 참다운 나를 잊는 것은 예수님을 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잊는 것은 나를 잊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잊는 것은 나를 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예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순간에도 예수 이름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가 내 존재의 시작이고 근거입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원수, 마귀와 싸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고 가나안 우상을 섬겼습니다. 10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잊자 가나안 우상이 두려웠고, 그들의 말을 듣게 됐습니다. 맞설 용기를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신 이유는 가나안 땅의 불의를 심판하고 가나안 땅에 정의를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맙시다. 십자가를 잊지 맙시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맙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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